마음을 사로잡아야 디자인이지 '안나 G'
마음을 사로잡아야 디자인이지 '안나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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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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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사진=알레산드로 멘디니 와인오프너 '안나G'_

웃고있는 여자

수수한 단발머리에 순진해 보이는 눈과 수줍은 웃음이 가득한 입을 가지고 있는 얼굴을 보아서는, 그리고 그 얼굴 아래로 몸통과 두 팔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서는 어느 완구회사에서 만든 인형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또 인형이라고 하기에는 앙증맞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형처럼 예쁜 것도 아니다. 뭘까?

이것은 다름 아닌 와인 오프너. 이탈리아 산업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와인 오프너 안나G"이다.

수수한 표정으로 다소곳하게 서 있는 물체가 와인 오프너라니! 재미있다. 그런데 무생물인 와인 오프너가 '안나G'라는 사람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사연이 좀 있다. 안나G는 바로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여자 친구 이름이었다. 어떤 말로는 자기 여자 친구가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고 이 와인 오프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말로는 어릴 때 할머니가 발레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기도 한다.

어떻게 디자인되었던 사람의 이름을 갖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와인 오프너는 각질 같은 우리의 선입견을 마구 벗겨내면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순진하게 성공하다

디자인이라면 마땅히 기능이라는 본질에 충실해야 할 터이다. 하지만 사람 모양에만 치중한 안나G를 보면 기능적으로 그렇게 뛰어날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와인 오프너에다 사람 모양만 넣어 놓은 캐릭터 상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방금 올라온 것 같은 얼굴을 보면, 이 앞에서 야박하게 기능성을 운운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저 안나G의 얼굴을 보며 측은지심이 묻어 나오는 가벼운 미소나 짓게 된다. 하지만 이 와인 오프너의 진면목은 순진하면서도 약간은 불쌍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다.

안나G는 지금도 1분에 한 개씩 팔린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디자인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것은 1993. 그 이후로 지금까지 1000만 개가 팔렸다거나 혹은, 1000만 개가 팔린다는 말도 들린다. 그래서 이 안나G'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연히 이것을 생산하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주방용품 회사 알레시Alessi를 대표하는 간판 제품이기도 하다.

빼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불가사이 한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써보면 안다

이걸로 와인 병마개를 따려면 병의 윗부분에 이 안나G의 몸통을 덮어야 된다. 그 다음엔 웃고 있는 단발머리를 손으로 단단히 잡고는, 머리를 빙글빙글 돌려 아래 부분의 나사가 코르크 마개의 윗부분을 파고들어가게 해야 한다. 나사의 회전에 의해 안나G의 양쪽 두 팔도 위로 올라간다. 안나G가 웃으면서 거의 만세 포즈를 취할 즈음에 안나G의 양손을 딱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내리면 병 주둥이를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위로 뽑힌다.

그 다음은 안나G를 테이블 위에 세워 놓고는 와인의 맛을 한껏 음미하면 된다.

안나G

성공방정식, 문화

이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와인 병 마개를 뽑는다는 일상적인 일이 안나G를 통해 매우 재미있는 행위로 바뀐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 인류학자 클러크혼 C. Kluckhohn은 문화를 생활의 설계design for living’라고 했다. 안나G의 디자인은 애초에 여느 디자인처럼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문화를 향했던 것이다.

일시적인 경제적인 성과는 단기간의 경영적 전략이나 전술로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몇 십 년에 걸친 성과는 그런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시장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문화이다. 안나G의 대단한 경제적 성공은 이런 문화적 성취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안나G의 수수한 외모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끌어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안나G를 사용하는 데에서 얻는 재미있는 경험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단순히 기능적인 필요성만을 충족시키는 디자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오래도록, 넓게 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하기 위해서라도 디자인이 진정 갖추어야 하는 것은 상품성이나 기능성이 아니라 문화라는 사실이다.

치명적인 매력은 은은한 유머

사실 안나G에 담긴 문화적 의도와 가치는 일반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니다. 그런 난해한 내용을 추구하면서도 대중들과 튼튼한 유대의 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안나G에 깔려있는 유머때문이다.

와인 오프너를 순진하게 생긴 여자의 모습과 합쳐놓은 아이디어나, 이 여자가 만세를 하며 와인 마개를 뽑는 움직임들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어루만지고 웃음 짓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이 디자인이 결코 폭소를 터트리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과도한 슬랩스틱 코메디가 당장은 웃기지만 오래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식상해 지는 것처럼, 과도한 웃음을 유발시켰다면 안나G는 십 수 년 동안 사람들을 매료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에 아기의 웃음은 언제 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적 가르침처럼 잔잔한 유머는 오래도록 지속되고, 많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허무는 힘이 크다.

안나G에서 놀라운 점은 여자의 얼굴모양을 바비 인형처럼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예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일부러 수더분하고 약간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정으로 디자인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모습의 안나G를 보고 그저 잔잔하게 오래도록 웃기만 할 뿐이지 과도한 감정을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바로 이런 처리야 말로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명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노련한 솜씨이다.

위자패지, 집자실지爲者敗之, 執者失之 , 하려는 자는 패할 것이요, 잡으려는 자는 놓칠 것이라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처럼 안나G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덕에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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