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야 했나?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2.04.02 15:24 의견 0

(이미지 출처 : 매일경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우리나라 속담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라는 말이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속담은 원래 부패한 절을 개혁하려다 실패한 스님이 체념하면서 뱉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이 속담은 오늘날에 와서는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구성원에게 “싫으면 네가 떠나라”하며 윽박지르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필자 역시 구성원을 내쫓기 위해 하는 말로 알고 있었다.

최근 어느 방송에서 우연히 이 속담을 들었다. 그때 필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방송에서 누군가 이 속담을 말하는데 마치 「칵테일 파티 효과」처럼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 문장이 귀에 들어왔다.

※ 「칵테일 파티 효과」 칵테일 파티같이 많은 사람의 목소리, 잡음이 많은 공간에서도 관심있거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는 현상 (필자 편집)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내뱉은 그 스님은 정말 절을 떠나고 싶었을까? 정말 절을 떠났을까? 떠날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절을 떠나야 하는 스님에 대한 가설

가설 1. 그 스님은 절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었다.

부패하고 있는 절을 보며 되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느꼈다면 애초부터 개혁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냥 빨리 이직준비를 해서 다른 절에 이력서를 넣거나, 아는 스님의 스님을 통해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개혁을 하려고 한 것을 보면 절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스님은 그 절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진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진심을 가지기 위해서도,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진심을 다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속세를 떠날 결심을 하고 그 절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순간도,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을 위해서 맞았던 찬바람과 아침햇살도, 절을 찾은 불자들의 눈빛도, 주지스님의 불경 읽는 소리까지도 그 스님에게는 모든 순간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진심을 스님은 부패로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설 2. 그 스님은 끝까지 절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부패세력에게 밀려 쫓겨나게 되었을 순간 조차도 스님은 절을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손길, 입김이 남아있는 풀 한 포기, 돌 하나, 마루에 남아있는 낡은 흠집까지도 애정이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두고서 떠난다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저녁 늦게 헤드헌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얼마 전 끝난 모기업 임원 포지션 지원자 한 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임원은 국내 굴지 대기업을 다니고 있으며 현재 연봉은 6억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봉 6억원을 포기하고 연봉 1억원의 중견기업 임원 포지션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든 임원은 보장받는 자리가 아닐 텐데, 왜 6억원을 포기하고 1억원을 선택했을까요?”

“저도 자세히 모르겠어요. 본인만의 사정이 생겼거나, 특별한 뜻이 있을 수도 있겠죠. 간혹 권력 싸움에서 밀려서 나오는 분도 계시니까 그런 이유일 수도 있어요. 그냥 그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스님은 애정어린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마음의 상처까지 감수하면서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임원은 오랜 기간 가졌던 애정보다 더 큰 상처가 있었던 것 같다.

절을 떠나기 전날 밤,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시련을 주신 부처님을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절을 떠나면서 마당에 서 있는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며, 떨어진 돌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역지사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

이번 칼럼에서 필자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속담의 주인공인 스님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모든 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게임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1분만 생각해보면 더 좋은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데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인 것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강하게 느낀다.

아직까지 내리지 못한 결론 하나. 나는 절을 떠나는 스님일까? 스님을 내쫓은 스님의 동료일까? 머리가 복잡하다. 둘 다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둘 다 경험해 봤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엉뚱한 생각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6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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