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어쩌다 리더, 어쩌다 소통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2.07.27 22:08 | 최종 수정 2022.07.27 22:09 의견 0

Episode 1. 소통 = ‘소’주 & ‘통’닭 ???

임원회의가 끝나갈 무렵 대표이사가 말했다.

“요즘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임원들께서도 직원들과 적극 소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부터 대표이사실 문을 열어 둘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 전달해주세요. 대표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입니다.”

대표이사 말이 끝나자 임원들은 ‘신선하다’, ‘훌륭하다’, ‘참신하다’고 덧붙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예상대로 며칠동안 대표이사실을 찾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며칠 후 임원회의에서 대표이사가 말했다.

“대표이사실 문을 열어둔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소통의 기회를 열어주었는데도 찾아오는 직원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군요.”

어떤 임원은 부하직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점잖은 임원은 팀장들과 함께 대표이사실을 찾게 할 적당한 직원을 골랐다. 한편 블라인드 익명 게시판에서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대표이사와 임원들 조차도 소통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그동안 술자리만 소통으로 알던 사람들이 과연 우리와 소통할 수 있을까?”

Episode 2.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오늘 본부장님과 점심식사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11시쯤 팀장이 말했다. 모두 얼굴이 일그러졌다. 점심약속이 있던 직원들은 열심히 불참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회사 비전과, 수퍼 히어로 못지 않았던 본부장의 왕년 과거사를 들어야 했던 점심식사가 끝났다. 체할 것 같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며 한마디’가 시작되었다. 제발 먼저 시작하면 좋을 텐데, 오늘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결정되면서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본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본부장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 자주 만들어 주셨으면…”

먼저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용비어천가를 시전해버렸다. 그래서 생각없이 무리수를 던졌다.

“오늘 같이 중요한 이야기를 듣기에 점심식사 1시간으로는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저녁시간 호프타임에서 오늘 못다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말을 마치고 나니 고개가 죄인처럼 푹 숙여졌다. 식당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동안 동료들 간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오래 전 이야기다. 그런데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경청(傾聽)

(출처 : YES24 블로그- 내 삶의 쉼표)

약 20년 전 필자가 다녔던 대학교에서는 몇몇 교수님들께서 제한없는 주제로 이야기 나누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 경청(傾聽)이었다. 당시 경청의 뜻은 몰랐지만, 귀를 울리는 느낌만으로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경청이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하는 것 (출처 : 산업안전대사전)

시간이 흘러 왜 모임 이름을 경청으로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더구나 가르치거나 결정하고 평가하는 자리에 계신 분들은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매우 서툴다. 이는 TV 토론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름 많이 배우고 높은 위치에 있는 그 분들조차 상대방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토론에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먼저 상대방 이야기를 듣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 바로 경청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년이 지난 지금도 경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어느덧 익명 게시판을 아이디어로 한 스타트업도 생겼다. 이야기를 들어줄 가족도, 친구도 없는 사람들은 점점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갔고, 그나마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전화상담원에게 폭언을 쏟아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만들어졌다(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소통 is not Communication

다시 소통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대표이사실 문을 열어 두었던 대표이사도, 돌아가며 한마디를 좋아했던 본부장도, 그리고 지금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리더들까지도 간과하는 것이 있다. 소통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영어사전에서는 소통을 Communica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통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술자리에서, 체육대회에서, 회의실에서 심지어 소통을 위한 행사에서도 모두 커뮤니케이션만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리더는 소통했다고 오해하고, 직원들은 불만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그런 이상한 자리에서도 직원들이 모여드는 사람이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안부전화가 온다. 심지어 조직을 떠난 사람도 가끔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기까지 한다. 그런 사람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비밀의 문아 열려라

소통은 3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된다. 경청, 공감, 피드백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새로운 이론 같지만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먼저 상대방 말을 듣고, 공감하고, 그리고 나서 나의 생각을 말하는’ 이렇게 쉬운 과정이다. 이러한 소통의 핵심을 잘 간파한 분야가 있다. 바로 최근 각광받는 데이트 심리학 분야다.

데이트 심리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절대 잘난 척을 하지 말라. 상대방이 말을 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라.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몸을 앞으로 기울여 듣고 있음을 보여주고, 고개를 끄덕여라. 상대방이 말을 하는 중간중간 ‘그래서요?’, ‘아~’ 등으로 반응하라.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말을 마치면 절대 평가하려고 하지 말고 ‘그랬군요’,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등 피드백을 주어라”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떨까? 상사, 부모, 선생님, 선배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그랬어”

“내가 고민 안 해봤겠니?”

“그게 뭐가 힘들어. 다 그렇게 살아”

1단계부터 말문이 턱 막힌다. 겨우 이야기를 다 했지만 공감을 얻기는 커녕 이상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까지 한다. 귀를 닫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익명게시판으로 달려간다. 최소한 그곳에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도 내가 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소통하고 싶은 리더가 되고 싶은가? 먼저 입을 닫고 말하는 사람에게 몸부터 기울이기 바란다.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말을 듣는 그대로부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구나” 이런 한 마디만 듣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억지로 소통하려 들지 말고 그냥 두어라. 인간은 원래 사회적 동물이다. 필요하면 모이고 필요하면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억지로 말하게 만들어봐야 나올 이야기는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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