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나는 진짜인가?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0.06.12 15:08 | 최종 수정 2020.06.12 17:54 의견 0

지금 숨쉬고 있는 나는 진짜일까?

1994년 일본에서 제작된 로봇 애니메이션 <용자경찰 제이데커>가 1996년 한국에서 <로봇수사대 K캅스>라는 이름으로 첫 방영을 했다. 이 애니메이션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경찰청은 강력사건 해결을 위해 로봇 경찰 프로젝트 <브레이브 폴리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유원일은 우연한 기회에 이 프로젝트의 첫 번쨰 로봇인 <데커드>와 만난다. 데커드는 유원일과의 만남을 통해 인공지능이 깨어나게 되고 단순한 경찰 로봇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후 유원일을 대장으로 로봇경찰대 브레이브 폴리스는 지구를 위협하는 범죄자들과 맞서 싸운다.

유치원에 다니는 친척 동생을 돌보다가 함께 보게 된 만화영화였다. 그런데 이 만화영화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몇 번째 에피소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에피소드는 정찰로봇 이야기였다. 이름은 <쉐도우 제트>로, 정찰 수행을 위해 경찰차, 경찰견, 초음속 제트기까지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경찰청은 쉐도우 제트와 똑같은 능력을 가진 복제로봇을 만들어 쉐도우 제트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훈련기간이 끝나자 복제로봇을 파기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여기에 나오는 로봇들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복제로봇 역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알게 된 복제로봇은 경찰청을 탈출해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강한 힘과 빠른 스피드 때문에 다른 로봇들은 이 복제로봇을 잡지 못한다. 마지막장면에서 쉐도우 제트와 복제로봇 만이 만나 실력을 겨룬다. 이때 복제로봇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내가 너를 복제한 가짜라고 말하지. 그런데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왜 가짜지? 어쩌면 내가 진짜고 네가 가짜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도 이 대사를 듣고 소름 끼쳤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를 찾아서

내가 느낀 이 충격을 사람들은 아마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느꼈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숨쉬는 이 세상이 프로그래밍된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어쩌면 내가,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존재의 두려움.

현실에서 내가 가짜라는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순간 중에 하나가 취업과정이다. 이력서라는 종이 한 장을 놓고 평소 하지 않았던 성찰을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고, 어떤 스펙을 가지고 있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써내려 가야 한다.

성찰 습관이 없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 과정은 너무 고통스럽다. 오죽하면 학원까지 있을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끝나면 2차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난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쓰레기처럼 살았을까…바로 자괴감의 시간이 온다.

그러나

여러분은 절대 생각 없이 쓰레기처럼 살지 않았다. 여러분은 지금 서있는 그 자리까지 절대 쉽게 오지 않았다. 수 많은 날을 고민하고, 갈등하고, 싸우고, 이별하고, 눈물 흘리며 얻은 자리이다. 현실이 시궁창이고 헬조선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심지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잘 생기고 예쁘고 돈 걱정 없는 인간들과 비교하면 당장 애인도 없고 먹고 살 걱정만 가득한 내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딱 1시간만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눈을 감고 기억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처음의 시간으로 가보자. 그때부터 지금 이 눈을 감고 있는 이 시간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돌아보자. 작은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웃고 있던 나, 친구들과 밤이 오는지 모르고 동네에서 뛰어 놀던 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미소 짓던 나, 이별 후 술에 취해 길을 걷던 나…그렇게 돌아보면 난 참 사랑 받고 또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짜 나를 알게되면 그렇게 고민하던 장점, 단점, 특기, 취미까지 써 내려갈 수 있다.

다시 종이를 펼쳐보자. 인생을 돌아본 후, 얼마나 스스로가 소중한 사람이었나 알게 된 사람의 글은 전과 다를 것이다. 소중하고 대단한 여러분의 존재감이 자신감과 함께 살아 오를 것이다.
여러분은 결코 가짜가 아니다…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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