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새해부터 에너지 새는 이야기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3.03.01 20:56 의견 0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출처 : 태산문정’(泰山問政),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예기(禮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孔子)가 노나라의 혼란에 환멸을 느끼고 제나라로 가던 길이었다.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다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프게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다.

공자 - “그대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오?”

여인 - “제 남편과 아들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모두 호랑이에게 물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공자 - “그렇다면 그대도 이곳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 - “아닙니다. 호랑이가 나타나도 이곳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

탓, Responsibility, Cause, Fault

새해 초부터 난방비로 시끄럽다. 도시가스비는 지난 해 4월, 5월, 7월, 10월 네 차례에 걸쳐 이미 인상되었다. 난방이 필요 없는 봄, 여름, 가을에 인상하다 보니, 본격적인 난방이 시작되는 겨울에서야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인상률은 약 39%지만, 실세 부과금액은 평년보다 2배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난방비 인상에 대해, 여당에서는 지난 정권이 남긴 재정적자가 이번 정부로 넘어오면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침체가 원인이며, 이번 정부의 미온적 대응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든 간에 이번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점은 씁쓸하기만 하다.

횡재(橫財), 뜻밖에 재물을 얻음 또는 그 재물

(출처 : 동아일보)

한편 정치권에서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 정유사들에게 <횡재세>를 부과하고, 난방비 인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법인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적자는 보조해 주지 않으면서 흑자에 대해서만 횡재세 명목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정치권의 횡재세 부과 논리에 찬성할 수 없다.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나누고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과 기업의 수익은 사회적 자원이 아니다. 개인과 기업이 그 수익을 얻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사용한 대가는 소득세, 법인세 등으로 이미 납부했기 때문에 남은 수익은 오롯이 개인과 기업의 것이다. 이것이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도 수익이 많이 났다는 이유로 개인과 기업의 수익을 사회적 자원으로 보고 분배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정유사들의 주장 역시 찬성할 수 없다. 정유사들이 거둔 엄청난 수익은 오롯이 정유사들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엄청난 적자를 시현한 2020년에도, 그리고 2021년과 엄청난 수익을 거둔 2022년에도 다르지 않았다. 혁신적인 기술개발, 유례없는 유통채널 발굴, 차별적인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은 없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상승으로 얻은 반사이익일 뿐이다. 정유사 역시 횡재세에 대한 반대논리로 차별적 기술이나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적자 때는 보조해주지 않으면서 흑자 때는 뜯어가려고 하느냐는 궁색한 주장만 하고 있다.

운(運)도 실력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을 필자는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성공에 운(運)이 전부라는 의미는 아니다. 노력해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운이 따랐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비록 정유사들의 수익이 오롯이 그들의 노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평소에 설비투자, 인력투자, 기술투자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외부환경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때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런 점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횡재세를 두고 저들이 싸우는 동안 어느 새 따뜻한 봄 소식이 들려오고, 난방비 이야기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한국사람들은 냄비근성이 있다고 한다. 빨리 끓고 빨리 식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적응력이 빠르다. 그래서 변화에 저항은 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현타(現time), 현실 자각 타임

공자께서 말씀하신 가혹한 정치란 바로 세금이었다.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여인은 호랑이가 나타나도 그나마 세금이 조금이나마 적은 그 마을에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금은 그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숨쉬는 것 빼고는 모든 행동에 세금을 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낸 세금이 정말 우리를 위해 쓰이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횡재세에 큰 관심이 없다. 만약 횡재세를 거두게 되더라도 그 세금이 서민들의 난방비 보조금이 될 것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유럽을 다녀오면 그런 생각이 든다. 주거, 노후, 자녀 학비만 해결된다면 내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주거, 노후, 자녀 학비 때문에 부업까지 해야 하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횡재세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매년 오르는 건강보험, 수령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국민연금, 또 오른다고 하는 소주와 맥주가격이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호랑이처럼 느껴진다.

(출처 : 전자신문)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6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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