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여전히 사랑받는 폭격기, 보머 재킷(Bomber Jacket) 이야기

김은영 전문위원 승인 2024.12.08 22:07 의견 0

가을이 갔다. 12월, 단풍 진 산에서 눈덮인 산으로 계절은 이동하고 있다. 패션 전문가들, 패션 관련 유투버들도 이제는 2024 FW 트렌드를 지나 겨울을 위한 아이템들을 발표하고 있다. 간절기 아이템인 가디건을 포함, 확실한 겨울 아이템인 코트들까지…그 가운데 2010년대 중,후반 거세게 유행하다 트렌드에서는 물러난 줄 알았던 플라이트 재킷(Flight jacket/a.k.a. Bomber jacket)이 크롭 길이이거나 오버사이즈이거나… 재단장하여 Y2K 패션의 카고 팬츠와 만나 다시 돌아왔다.

“군복은 패션에 있어서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고들 이야기 한다. 육군의 트렌치 코트가 클래식 패션의 대표 일상복이 된 것처럼 공군의 대표 아이템 보머 재킷(Bomber Jacket)도 오늘날 스트리트 패션의 가장 인기 있는 아우터(outer)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마도 이 둘은 일반인들의 평상복으로 크로스오버하는데 성공한 가장 유명한 군복들일 것이다.

상징적 보머 재킷의 탄생 : 플라이트 재킷의 진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공중 폭격은 일반적인 전쟁 전략이었지만 그 당시 대부분의 전투기는 조종석이 열려 있고 단열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출된 조종사를 위한 보온성 아우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따라서, 미 육군 항공의류 위원회(US Army Aviation Clothing Board)는 1917년 추위로부터 보호해 줄 가죽과 모피 안감으로 된 WW1용 플라이트 재킷을 만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항공기 조종석의 모양이 좁아지고 기술이 복잡해지면서 부피가 큰 아우터가 불편해지자 1927년 미 육군은 최초의 표준 플라이트 재킷인 A-1를 생산했다. A-1은 이전 플라이트 재킷보다 유선형으로, 말, 양, 혹은 염소 가죽들로 만들어졌다. 단열을 위해 니트 허리밴드와 커프스가 있었으며, 버튼 여밈과 양쪽의 플랩 포켓(flap pocket)이 특징이었다. A-1은 1931년에 A-2로 대체되었는데, A-2는 보다 안전하게 윈드 플랩(wind flap)이 있는 지퍼 여밈과 접이식 칼라(fold-down collar)로 바뀌었다. 이 당시 전투기에 폐쇄형 조종석이 도입되었지만, 플라이트 재킷은 계속 개방형 조종석 맞춤용으로 최적화되어 있었다.

<출처> A-1 Flight Jacket. Goodwear Leather. heddels.com.

1930년대 이미 육군과 해군에 도입되었던 G-1은 1943년이 되어서야 공군에서 A-2를 대체하였다. G-1은 윈드 플랩을 제거하고 바이스윙 백(bi-swing back)과 양털 모피 칼라를 추가했다. 후에 G-1은 ‘Top Gun 재킷’으로 유명세를 가지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항공 기술은 더욱 발전하였고, 제트기의 발명은 전투기가 훨씬 높은 고도, 즉 이전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비행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가죽 소재였던 플라이트 재킷은 비나 땀에 젖으면 물이 얼어 춥고 단단해지는 불편을 초래했다. 또한 더욱 유선형 디자인으로 설계된 신형 제트기는 조종석 공간이 대폭 줄어들면서 날렵하고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플라이트 재킷, 말 그대로 진심 폭격기 재킷(bomber jacket)을 필요로 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B시리즈가 시작되었으며, 1944년에 등장한 B-15는 B-10과 마찬가지로 외피 소재가 면으로 바뀌었고, 1945년 낙하산 생산에 더 이상 재료가 필요하지 않게 되자 관리의 용이성, 방수성, 곰팡이, 곤충 및 땀에 대한 저항성이 좋은 나일론 소재로 대체되었다. 울 니트 커프스와 양털 모피 칼라를 재도입했으며, 왼쪽 소매의 펜 포켓, 전면의 슬래시 포켓(slash pocket), 산소 마스크 보관용 가죽 스트랩이 특징이었다. B-15는 오늘날 최고 상징적이며 가장 많이 복제된 보머 재킷, MA-1의 전신이 된다.

<출처> Eastman Leather’s version of the B-15 Jacket / heddels.com.

1948년 지금의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의 전신인 Dobbs Industries에 의해 처음 제작되어 1949년 미군에 도입된 MA-1은 항공기 자체의 기술 발전과 조종사들의 요구로 인해 다시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업그레이드된 단열재를 사용한 조종석과 낙하산 하네스 착용 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양털 모피 칼라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신축성 있는 울 니트 스탠딩 칼라(standing collar)로 교체하였다.

<출처> MA-1 Bomber Jacket / alphaindustries.com

MA-1은 원래 미드나잇 블루 색으로 만들어졌지만, 지상에서의 위장을 위해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중에 주로 세이지 그린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밝은 오렌지색(a.k.a. Rescuer Orange) 안감도 MA-1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비행기 충돌 시 추락한 혹은 실종된 조종사를 구조 팀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뒤집을 수 있게 디자인된 것이다.

1960년대 알파 인더스트리는 미 국방부와의 계약을 통해 군용 아우터를 제작했으며, 플라이트 재킷은 더 가벼운 L-2B, CWU-45P 및 여름용 CWU-36P를 포함하여 여러 버전이 만들어졌다. 이 두 가지 CWU 유형은 모두 난연성 nomex로 만들어졌으며, 현재의 군용 플라이트 재킷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MA-1은 현재 공식적으로 군용에서는 은퇴하였지만, 일상 패션 속에서는 가장 상징적인 보머 재킷으로 널리 착용되고 있다.

보머 재킷의 변신 : 스트리트 문화와의 콜라보레이션

보머 재킷이 유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60년대 후반 영국에서 노동 계급의 하드 모즈(hard mods) ‘스킨헤드(skinheads)’ 는 당시의 변화하는 사회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보머 재킷을 선택하였다. 분열된 부유한 모즈(mods)가 부르주아적인 해링턴 재킷(Harrington jacket )을 선호하는 것에 대한 거부였을 수도 있었다. 보머 재킷은 삭발한 머리, 무거운 작업자 부츠, 청바지같은 작업복, 보머 재킷을 포함한 군대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템을 선호한 스킨헤드를 통해 거칠고 초남성적인 모습으로 보여지며, 스트리트 문화와 만나기 시작했다.

<출처> skinheads / hypebeast.com / Getty Image

동시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는 미국의 영향이 문화적으로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MA-1은 젊은이들에 의해 사랑 받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에 주둔한 미군은 보머 재킷에 일본풍 자수를 놓거나 수공예품을 장식하여 기념품으로 가져오는 전통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장식된 보머 재킷은 의미 그대로 ‘수버니어 재킷(souvenir jacket/ 기념품 재킷)’ 또는 ‘스카잔(sukajan/ 일본 지역명 요코스카의 ‘스카’와 점퍼의 일본식 줄임말인 ‘잔’의 합성어)’으로 불리었고, 1960년대 들어 일본에 미국 패션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반항적 느낌의 패션 필수품으로 재등장하게 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70년대와 80년대에 새로운 음악, 예술, 패션에 있어 힙합이라는 혁명적인 문화가 폭발하고 있었다. 이 당시 힙합 아티스트들은 보머 재킷, 카모 프린트(camouflage print), 헤비한 부츠와 같은 밀리터리 스타일을 착용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스타일적인 선택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투쟁에 대한 표현으로, 그들은 거리에서 자신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강인하고 거친 거리의 정신을 밀리터리 의복을 차용한 힙합 패션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아이콘이 된 보머 재킷 : 대중 문화, 하이 패션계와의 조우

보머 재킷이 군용 아우터에서 일반인의 옷장 속으로 들어오면서 디테일의 변화가 있었다. 보머 재킷의 전통적인 양모 니트 칼라가 가정용 옷장에 보관 시 나방이나 벌레에 취약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양모 소재는 아크릴 또는 아크릴/양모 혼방으로 교체되었다.

대중화를 위해 디테일이 변화되듯이 보머 재킷은 젊은이들의 하위 문화뿐 아니라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일반적인 대중 문화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1980년 ‘The Hunter’에서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은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밝은 오렌지색 안감의 세이지 그린의 MA-1 재킷을 입고 등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스티브 맥퀸이 ‘Great Escape’에서 착용한 A-2 역시 명장면에 어울리는 멋진 제품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1986년 드디어 영화와 패션 사에 길이 남을 G-1 재킷을 입은 톰 크루즈(Tom Cruise) 주연의 영화 ‘Top Gun’ 이 나와 버렸다. ‘Top Gun’은 G-1의 폭발적인 판매를 가져왔고, 보머 재킷 수집가들이 생겨나게 했으며, 보머 재킷을 아이코닉한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어 버렸다.

<출처> G-1 and Tom Cruise in Top Gun / alphaindustries.com

또한, 영향력 있는 래퍼이자 패션 아이콘인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2016년 알파 인더스트리와 협력하여 투어를 위한 상품을 제작했을 때 다시 한번 MA-1 재킷은 힘을 얻었다. ‘카니예 효과’로 인해 알파 인더스트리의 그 해 매출은 급증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MA-1 재킷이 가장 선호하는 유니섹스 스타일이 되면서 머스트 아이템으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하이엔드 패션계도 남성 보머 재킷의 폭발적인 인기에 주목하게 되면서 디자이너 Raf Simons은 보머 재킷을 런웨이에 올리는데 앞장서게 된다. 그는 2000 S/S 컬렉션 ‘Pyramid’를 시작으로 2001 FW ‘Riot Riot Riot’ 컬렉션에서 보머 재킷을 선보였으며, 이어 Helmut Lang, Rick Owens 등 하이 패션 컬렉션에 보머 재킷은 계속 등장하면서 주류 패션에 입성하게 된다.

<출처> Raf Simons 2001FW “Riot Riot Riot” Camouflage Bomber / highsnobiety.com

1949년에 탄생한 MA-1이 그 당시 형태가 보존되면서 아직까지 널리 애용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부분은 다양성이다. 보머 재킷의 넉넉한 표준 핏은 중립적이고 캐주얼하여 성별, 연령, 스타일에 제한을 받지 않게 해주었으며, 군용 아이템들이 주는 탁월한 기능적인 디자인들은 일상에서도 쉽게 착용할 수 있는 실용성까지 충족해주기 때문이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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