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요즘 ‘스타일리쉬함’의 필수템, 스니커즈(Sneakers) 이야기 I 편

머스트 뉴스 승인 2023.04.02 15:04 | 최종 수정 2023.04.16 21:43 의견 0

운동화가 필수템인 시대가 왔다. 운동화 수집광이 아니더라도, 재테크를 위한 에디션 수집가가 아니더라도, 운동선수가 아니, 운동을 전혀 안 하더라도 패션을 위해 운동화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일상복뿐 아니라 정장 수트에도 운동화를 적절히 매치해야만 스타일리쉬하다는 찬사를 듣는 시대이니 말이다.

오늘날 운동화는 그 어떤 패션 아이템보다 착용자의 아이덴티티를 개성있게 표현해주고 있다. 운동 선수는 물론이고, 셀럽부터 아이들까지, 운동장에서 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착용하는 운동화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이지만, 이젠 스타일의 핫템으로 패션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필수템이며 핫템마저 되어버린 운동화의 역사와 패션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알아보자!

‘스니커즈’는 ‘좀도둑’ 신발이다?

운동화는 원래 주로 스포츠 또는 기타 형태의 운동을 위해 설계된 신발이다. 일반적으로 ‘sneakers’로 불리지만, 나라와 지역에 따라, trainers, athletic shoes, tennis shoes, gym shoes, sport shoes, running shoes, or runners 등으로 불린다.

‘sneakers’라는 명칭은 1887년 보스턴 저널(Boston Journal)이 테니스화에 붙여진 이름이라며 소개하였고, 1917년 N. W. Ayer & Son의 광고 대행사였던 미국인 Henry Nelson McKinney가 사용하였다.

고무 밑창이 달린 이 새로운 신발은 딱딱한 가죽 밑창을 가진 시끄러운 가죽 드레스 슈즈와는 달리, 너무 조용해서 ‘은밀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sneaker(살금살금 걷는 사람, 좀도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1870년대 Nicholette Jones의 저서 「The Plimsoll Sensation」에 의하면, 운동화의 상판와 밑창을 연결하는 가로 밴드가 배의 선체에 있는 Plimsoll라인 즉, 워터라인(waterline)을 닮아 ‘plimsoll’이라는 이름도 얻었다고도 한다.

‘스니커즈’를 탄생시킨 결정적 발명들

운동화의 역사는 1839년 미국 과학자 Charles Goodyear가 가황 고무를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데, 가열된 고무에 유황을 첨가하여 방수 및 성형이 가능한 유연한 물질을 만드는 과정으로, 후에 신발에 적용되어 더 내구성 있는 밑창을 만들 수 있게 해준 획기적인 공정이었다. 주로 플림솔(plimsolls)에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초부터 변형된 형태로 현대 운동화(sneakers)의 조상이 탄생했다.

최초의 현대적 운동화는 1830년대 John Boyd Dunlop이 설립한 ‘The Liverpool Rubber Company’에서 만들어졌는데, Dunlop은 캔버스 상판을 고무 밑창에 접착하는 방법을 발견한 혁신가였다. 이것은 모래신발(sandshoes)로 알려졌으며, 빅토리아 시대 주로 해변 여행을 할 때 신었다고 한다.

이후, 1892년, 미국의 U.S. Rubber Company는 Keds라고 불리는 캔버스 상판에 두꺼운 고무 밑창이 있으며, 레이스업으로 더 편안한 미국 최초의 고무 밑창 운동화를 탄생시켰고, 1916년에 Keds를 대량 판매하기 시작한다.

또 하나의 위대한 혁신 중 하나는 1971년 어느 일요일 여름 Bill Bowerman에게 찾아 왔다. 선수들 각각을 위해 맞춤형 신발을 세심하게 제작하던 오레곤 대학교 트랙 코치였던 그는 선수들이 트랙 이외의 표면에서 훈련할 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개발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아내가 만든 와플을 보고, 와플 기계 iron의 홈이 그가 구상하던 밑창을 위한 완벽한 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964년 공동 창립한 Nike가 오늘 날 러닝화 및 트레이닝화에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운동화 밑창(sole)의 상징이 된 ‘와플 트레드(waffle tread)’ 패턴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실험하고 또 실험하여 이루어냈다.

<출처> Bill Bowerman fine tunes his original outsole. Nike / www.smithsonianmag.com

‘스니커즈’ 그리고 스포츠

역사가 Thomas Turner는 19세기 후반을 산업 발전으로 인한 사회 변화가 스포츠 활동을 증가시킨 시기로 보았으며, 「Kicks: The Great American Story of Sneakers」의 저자인 Nicholas Smith에 의하면 최초의 고무 밑창 운동화는 1860년대에 크로켓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잔디 얼룩과 잔디 손상 가능성 때문에 내구성이 있으면서도 유연한 밑창이 있는 신발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크로켓 열풍은 엘리트 남녀 사이에서 테니스 열풍으로 바뀌었고, 이로 인해 보다 특수한 유형의 신발이 필요해졌으며, Dunlop은 1929년에 Wimbledon에서 테니스의 전설인 Fred Perry가 착용한 상징적인 Green Flash 모델을 출시하게 된다. 또한, 1936년 프랑스 브랜드인 Spring Court는 고무 밑창에 시그니처인 8개의 통풍 채널이 있는 최초의 캔버스 테니스화를 판매하였다.

테니스 열풍에 이어, 1891년 농구의 출현은 학생들과 YMCA 회원들을 빠르게 매료시켰고, 스니커즈가 인기를 끌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특히 농구와의 인연이었다. 1917년 Converse는 최초의 농구 경기용 운동화 All-Star를 출시하였는데, 1920년대 초반 코치이자 세일즈맨으로 고용된 Chuck Taylor의 활약으로 브랜드는 급성장을 하게 된다(최초의 농구화는 1907년 Spalding이 디자인 하였지만 말이다). 농구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Converse는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고, 주로 운동선수를 위해 만들어진 운동화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1934년 All Star는 ‘Chuck Taylor’라는 글자가 운동화 시그니처 패치에 추가되어 Chuck Taylor All-Star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팀은 Converse를 신고 출전하였다.

<출처> Basketball star Chuck Taylor publicly endorses Converse All-Star shoes.

농구와 관련된 또 하나의 유명 운동화는 이름 그대로 되어버린 70년에 나타난 Adidas의 ‘슈퍼스타(Superstar)’였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60년대까지 러닝화에 주력했던 독일 회사 아디다스는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했고, 그것을 위해선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중 하나인 농구에 적응해야 했다. 이는 1917년 출시 이후 수십 년 동안 농구 코트를 지배한 Converse Chuck Taylor All-Star를 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Superstar’는 출발점은 원래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출시된 훈련용 신발이었지만 농구화를 위해 완전히 변신되어야 했다. 아디다스만의 가벼운 가죽은 Chuck Taylor All-Star 캔버스 천보다 선수들에게 더 나은 보호 기능을 제공했으며, 대형 힐 카운터(heel counter)와 그립감이 좋은 Morvan 고무로 만든 헤링본 패턴의 밑창은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접지력을 향상시켜 발목 염좌의 위험성을 줄여 주었다. 또한, 뒤꿈치 부분의 쐐기(wedge)는 착지 시 신발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며, 푹신하게 패딩 처리된 일명 혀(tongue)는 신발 끈을 단단히 조였을 때 혈액 순환이 방해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여기에 ‘Superstar’ 디자인의 상징이 된 앞 부분의 고무 쉘(shell)은 발가락 보호는 물론 내구성까지 더해주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아디다스는 1967년 NBA 데뷔를 한 새로운 팀 샌디에이고 로켓츠(San Diego Rockets)와 함께 농구 코트에 진출을 했고, 1969년 NBA 결승전에서 보스턴 셀틱스(Boston Celtics)의 핵심 선수들이 신고 있는 아디다스 모델(Supergrip : 하이탑 모델이며 Superstar의 전신)이 목격되었다. 이후 1973년까지 NBA 선수의 ¾이 아디다스의 신발을 신었고, 수십 년 동안 농구 코트를 지배해 오던 Converse All-Star를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Superstar’는 적절한 타이밍에 NBA를 장악하고, 자신이 가진 핵심 속성인 동작의 민첩성을 뒷받침 해준 기술로 인해, 이후 시대의 대세가 된 스트리트 문화, 즉 브레이크 댄스(breakdancing) 또는 비보잉(b-boying)까지도 섭렵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영국 기업 J.W. Foster and Sons는 1895년에 달리기용으로 디자인된 최초의 신발을 생산했는데, 여기에는 더 큰 견인력과 속도를 위한 스파이크가 달려 있었다. 이 회사는 고품질의 핸드메이드 러닝화를 전 세계 선수들에게 판매하였고, 1924년 하계 올림픽 영국 대표팀의 러닝화 제조 계약을 하게 된다. 1958년 J. W. Foster and Sons는 오늘날 Reebok으로 알려진 운동화 브랜드로 변모하였고, 1980년대에는 달리기용으로 개발되었지만, 패션 신발로 더 유명해진 Reebok Classic Leather를 출시하면서 성공적 시대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2005년 아디다스의 자회사로 인수된다.

<출처> Adidas is Born. German Adi Dassler creates Adidas. 1924. Jan

여기에 1924년 독일 형제인 Rudolf와 Adolf "Adi" Dassler도 뛰어들면서 운동선수를 위한 신발을 디자인하는 자체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1940년대 후반 각자의 길을 가며 오늘날 운동화의 대표 브랜드를 탄생시킨다. Rudolf는 Puma를 설립하고, Adolf는 1949년 Adidas를 만드는데, Adidas는 완벽한 가죽 밑창과 스파이크가 있는 최초의 트랙 슈즈를 만든다. 1936년 미국 육상 선수 Jesse Owen은 Dasslers가 디자인한 트랙 슈즈를 신고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착용한 러닝화의 75%가 아디다스일 정도로 육상 시장을 장악하였다.

1950년대에 이르자 여가 시간이 확대되고, 학교 복장이 완화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운동화 판매가 높아지면서, 50년대 후반에는 시장 점유율을 놓고 치열한 광고 전쟁이 벌어졌다. 1970년대에는 미국을 강타한 조깅 열풍이 불면서, 조깅 시 편안함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운동화가 잘 팔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축구, 조깅, 달리기 등을 위한 맞춤 운동화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되었으며, 조깅 열풍 후 이어진 에어로빅의 붐은 운동화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 1970년대에 마침내 지금까지도 아이다스와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거물 운동화 브랜드 Nike가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이름을 딴 Nike는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목표에 매우 충실한 브랜드였으며, Nike의 첫 번째 상용 디자인은, 현재까지도 클래식 모델로 사랑 받고 있는, 러닝을 위한 쿠션이 있는 ‘코르테즈(Cortez)’였다.

지금까지 ‘스니커즈’라 불리는 운동화의 발명 비화와 스포츠와 관련된 운동화 브랜드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계속해서 다음 편에는 운동화와 대중 문화와의 이야기를 살펴 보도록 하겠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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