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 상승과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폭발하면서 기업 전기요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 확장을 위해 80기가와트(GW)의 전력 확보를 선언했다. 80GW는 원자력발전소 80기가 1년 내내 가동하는 전력량이다. 이러한 전력 수요 급증은 전력망 전체를 압박하며 제조업 전기요금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에너지는 더 이상 관리 대상 비용이 아니라 전략적 자산이 되었다. 해답은 태양광과 ESS(에너지저장장치)다.

독일 제조업체가 보여준 구체적 성과

보쉬(Bosch)그룹의 자동화 부문 자회사인 보쉬 렉스로스(Bosch Rexroth)는 공장에 2020년 태양광 4MW와 ESS 3MWh를 구축했다. 4MW는 약 1,200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며, 3MWh는 그 전력을 3시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투자비 약 60억 원 중 정부 보조금으로 20억 원을 지원받아 실제 부담액은 40억 원대였다.

이 기업의 핵심 전략은 시간대별 전기요금 차이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낮 시간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ESS에 저장한 뒤, 전기요금이 가장 비싼 오후 48시 피크 시간대에 집중 사용했다. 독일은 피크 시간대 전기요금이 심야 대비 34배 높기 때문에 절감 효과가 크다. 심야에는 저렴한 전력으로 ESS를 충전해 다음날 아침 생산 라인 가동에 활용했다.

첫 해 결과는 명확했다. 연간 전력비 28% 절감, 금액으로 약 17억 원 감소. 투자 회수 기간은 당초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었다. 더 중요한 성과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독일 전기요금이 평균 3배 급등했을 때 나타났다. 경쟁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겪는 동안, 보쉬 렉스로스는 자체 생산 전력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며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했다.

이를 '에너지 헤지(hedge)' 전략이라 부른다. 금융시장에서 헤지는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변동에 대비해 선물 계약을 맺는 것처럼, 에너지 헤지는 전기요금 변동에 대비해 자체 발전 능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외부 전기요금이 급등해도 자체 전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가격 변동성으로부터 경영을 보호할 수 있다. 보쉬 렉스로스는 태양광·ESS를 재무 전략이자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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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게 더 절실한 이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에너지 대응 능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로 전력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으로 가격을 고정하거나 복수의 공급처를 확보할 자본력이 있다. 또한 전담 에너지 관리 조직을 운영하며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이 모든 측면에서 취약하다.

먼저 재무 구조상 에너지 비용의 영향이 훨씬 크다. 중소 제조업체는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어려워 매출 대비 전력비용 비중이 대기업보다 높은 편이다. 전기요금이 급등하면 대기업보다 수익성 악화 폭이 크고, 실제로 2022~2023년 전기요금 인상 시기에 많은 중소 제조업체가 적자 전환하거나 조업을 단축했다.

협상력 부재도 심각한 문제다. 대기업은 한전과 대규모 계약을 통해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지만, 중소기업은 표준 요금제를 그대로 적용받는다. 전력 중개 시장이나 재생에너지 직접 구매 같은 대안 접근도 규모가 작아 경제성이 떨어진다. 결국 외부 전기요금 변동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글로벌 공급망 요구사항이 추가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2025년부터 1차 협력사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인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2~3차 협력사에도 RE100 달성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과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도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소기업이 태양광·ESS를 도입하기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도 있다. 대도시 중심의 대기업 본사와 달리, 중소 제조업체는 대부분 산업단지나 외곽 지역에 위치해 일조량이 풍부하고 설치 공간 확보가 용이하다. 공장 옥상이나 부지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하면 별도 부지 매입 없이 설치할 수 있다.

투자 효과도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연 매출 500억 원 규모의 중소 제조업체가 전력비로 연간 20억 원을 지출한다고 가정해보자. 태양광·ESS 도입으로 전력비를 30% 절감하면 연간 6억 원을 아낄 수 있다. 초기 투자비가 30억 원이라면 회수 기간은 5년이지만, 정부 지원금으로 투자액의 절반을 지원받으면 회수 기간은 2~3년으로 단축된다.

국내 기업들의 실행 전략

보쉬 렉스로스 사례는 에너지 전략이 성공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단순히 설비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에너지 구조를 분석하고 최적화된 운영 체계를 구축했기에 투자 회수 기간을 단축하고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태양광·ESS를 효과적으로 도입하려면 세 가지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 번째는 자사의 에너지 사용 구조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생산 공정이 집중되는 시간대, 피크 전력 사용 패턴, 계절별 변동성을 분석해야 최적 용량을 설계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무료 에너지 진단 서비스를 활용하면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구체적인 데이터와 함께 투자 타당성을 제시한다.

두 번째는 단계적 접근이다. 처음부터 전사적 대규모 투자보다는 주력 공장 한 곳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편이 현명하다. 6개월~1년간 실제 발전량, 절감 효과, 계절별 변동성 데이터를 축적한 뒤 투자 타당성을 검증하고, 이후 다른 사업장으로 확대하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세 번째는 스마트 에너지관리시스템(EMS) 구축이다. 실시간 발전량·저장량·소비량을 모니터링하고, 전력 요금에 따라 자동으로 충전과 방전을 조절하는 지능형 시스템이 필요하다. EMS는 기상 예보와 연동해 다음날 일조량을 예측하고, 생산 계획과 결합해 최적의 에너지 사용 계획을 수립한다.

에너지 사용 분석, 시범 운영을 통한 검증, 지능형 관리 시스템 구축. 이 세 가지 전략을 체계적으로 실행한 기업만이 태양광·ESS 투자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독일 기업들이 에너지 위기를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았듯이, 선제적으로 에너지 자립 체계를 구축한 국내 기업이 다음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심준규. 경영학박사.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 ESG로 성과내는 사람들>,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