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해, 그리고 남은 질문

2025년 한 해 동안 중소기업 경영진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과 싸워야 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공급망 재편 압박이 커졌고,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며 원가 관리가 어려워졌다. 국내 정치 환경도 불안정했고, 환율 변동은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직격했다.

그런데 이런 외부 변수들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 문제가 하나 있었다. 사람이다. 중장년층은 조기 은퇴를 선택하거나 명예퇴직을 받아들였고, 2030세대는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면서 구인난이 심화됐다. 외부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작동하지 않는다.

2025년이 남긴 질문은 명확하다. 인력 위기를 채용 조건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재의 정의 자체를 다시 써야 할까?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 이하 D&I)이 2026년 이후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D&I는 윤리가 아니라 경영 전략이다

D&I를 윤리적 가치나 사회적 책임으로만 접근하면 경영 관점에서는 비용으로 인식되기 쉽다. 성별, 연령, 국적,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채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옳지만, 중소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당장의 생산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D&I는 여유 있을 때 하는 것, 대기업이나 신경 쓰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D&I를 시장 전략으로 전환했다. 다양한 배경의 인력이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세대가 협업하며 제품 혁신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국내 중소기업도 2026년 이후에는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인력 부족을 채용난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인재 풀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세대 간 맞춤 전략이 핵심이다. 중장년층은 경험과 노하우를, 2030세대는 디지털 감각과 새로운 시장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을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지 말고, 각자의 강점을 조합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외국인 인력도 마찬가지다.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만, 유연 근무제와 결합하면 오히려 다양한 인재를 확보하는 기회가 된다. 육아와 병행해야 하는 경력 단절 여성, 건강 문제로 전일 근무가 어려운 중장년층, 부업이나 창업 준비를 병행하려는 2030세대 모두 유연 근무제 하에서 더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독일 중견기업, 난민을 시리아 시장 전략가로 만들다

독일 기계 제조업체 Voith(포이트)의 사례는 D&I를 시장 전략으로 전환한 대표적 모델이다. 포이트는 1867년 설립된 독일 기업으로, 수력발전 설비와 제지 기계, 산업용 동력 전달 시스템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술 그룹이다. 연매출 약 5조 원 규모로 60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특히 수력발전 터빈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독일 정부는 기업들에게 난민 고용을 권장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단순 생산직으로 난민을 채용했지만, 포이트는 다른 접근을 했다.

시리아 출신 엔지니어 출신 난민들을 적극 채용하고, 이들에게 독일어 교육과 기술 재교육을 제공했다. 그런데 포이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 이전에 댐 건설과 수처리 시설 프로젝트에서 일했던 이들의 경력을 주목했고, 중동 시장 재진출 전략팀에 배치했다.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등 중동 지역의 인프라 재건 수요를 분석하고,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바이어 접촉을 시도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시장 확장으로 나타났다. 2018년 포이트는 요르단 정부의 수처리 시설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2020년에는 이라크 북부 지역 댐 보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리아 출신 직원들은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중동 지역의 인프라 기준과 조달 절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본사 직원들이 파악하기 어려웠던 시장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이트 사례가 주는 교훈은 D&I를 단순히 사회적 책임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민을 채용한 건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었지만, 이들의 경력과 네트워크를 시장 전략으로 연결했다. 다양성은 그 자체로 가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장 기회를 발견하는 자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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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조업체, 60대 퇴직자를 품질 전략가로 재고용하다

일본 정밀 부품 제조업체 Misumi Group(미스미 그룹)의 사례는 세대 간 협업을 통해 품질과 혁신을 동시에 확보한 모델이다. 일본 제조업은 2010년대 중반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로 숙련 기술자 부족 문제를 겪었다. 미스미 그룹도 마찬가지였는데, 2015년부터 60대 기술자들이 정년 퇴직하면서 불량률이 상승하고 신입 사원의 숙련 기간이 길어졌다.

미스미는 퇴직한 60대 기술자들을 재고용하되, 역할을 재설계했다. 주 3~4일 근무, 유연 근무제, 프로젝트 기반 계약 등 다양한 형태로 고용했고, 이들을 신입 사원의 멘토가 아니라 품질 전략 자문으로 배치했다. 현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대신, 공정 분석과 개선 제안에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2030세대 신입 사원들에게는 디지털 도구 활용과 데이터 분석 권한을 줬다. IoT 센서를 활용한 실시간 공정 모니터링, AI 기반 불량 예측 시스템 도입 등을 젊은 세대가 주도하게 했다. 60대 기술자는 수십 년의 경험으로 어떤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했고, 2030세대는 데이터로 그 문제를 검증하고 개선 방안을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생산성과 품질 개선으로 나타났다. 불량률이 30% 감소했고, 신제품 개발 주기가 20% 단축됐다. 60대 기술자가 제안한 공정 개선 아이디어를 2030세대가 디지털 도구로 구현하면서 시너지가 발생한 것이다. 미스미는 이 방식을 'Skill Bridge Program'이라 명명하고,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미스미 사례가 주는 교훈은 세대를 단순히 나이로 구분하지 않고, 각자의 강점을 조합했다는 점이다. 60대는 경험, 2030세대는 디지털 감각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두 세대가 협업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D&I는 세대 갈등을 해소하는 윤리적 과제가 아니라, 품질과 혁신을 동시에 확보하는 경영 전략이 됐다.

2026년, 국내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

포이트와 미스미의 사례는 D&I를 윤리가 아니라 전략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난민을 채용한 건 사회적 책임이었지만, 이들의 경력을 시장 전략으로 연결했다. 60대를 재고용한 건 숙련 기술 보존이었지만, 2030세대와의 협업으로 혁신을 만들어냈다.

국내 기업이 2026년에 준비해야 할 구체적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 외국인 인력을 단순 생산직이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 전략가로 재배치해야 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출신 직원이 있다면, 이들을 해당 국가 시장 분석과 바이어 발굴에 투입해야 한다.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인력은 시장 조사 비용을 절감하고, 현지 네트워크 구축 시간을 단축시킨다.

둘째, 중장년 퇴직자를 유연 근무제로 재고용하되, 역할을 멘토가 아니라 전략 자문으로 설정해야 한다. 주 3일 근무, 프로젝트 기반 계약, 시간당 급여 인상 등 다양한 형태를 시도하고, 이들의 경험을 품질 개선과 공정 혁신에 활용해야 한다. 신입 사원 교육에만 투입하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공정 분석과 개선 제안에 집중시키면 즉각적인 성과가 나온다.

셋째, 2030세대에게는 디지털 전환 권한과 실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건 급여만이 아니라, 의사결정 권한과 성장 기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IoT, AI, 데이터 분석 같은 디지털 도구 도입을 젊은 세대가 주도하게 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를 만들면 이직률을 낮출 수 있다.

주 4.5일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2026년, 근로시간 단축을 생산성 저하로 받아들이지 말고 유연 근무제 확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육아와 병행하는 경력 단절 여성, 건강 문제가 있는 중장년층, 부업을 병행하려는 2030세대 모두 주 4.5일제와 유연 근무제 하에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D&I는 이제 비용이 아니라 시장 확장과 혁신의 프레임이다. 지금이 준비할 때다.

[저자소개]

심준규. 경영학박사. 인하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녹색금융으로 읽는 ESG 이야기>, <그린북 : ESG로 성과내는 사람들>,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