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SS 트렌드가 발표되었을 때 디자이너 클로에(Chloe)의 영향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트렌드를 알려주는 거의 모든 유투버가 '보호시크'를 언급했다. 시간이 흘러 6월도 끝나가는데...아직 적어도 우리 나라는 '보호시크'의 물결이 크게 밀려오지는 않는 것 같다.

셔츠 이야기를 쓴 후 블라우스 이야기도 쓰고 싶었는데...블라우스는 셔츠와 혼동되고 겹치면서(그래도 나름 한 스토리로 잡아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고, 블라우스 각각의 이야기를 따로 다루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블라우스의 처음과 가장 닮은 아이...페전트 블라우스(Peasant Blouse)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블라우스의 처음, 농민 노동자들의 작업복

블라우스(Blouse)는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차용된 단어로, 원래 프랑스 노동자들이 입는 파란색 블라우스를 '블라우스'라는 용어로, 영국 농장 노동자들이 입는 다양한 작업복과 튜닉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0년에 처음으로 '젊은 여성을 위한'이라는 의미로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1900년대 이전, 특히 1850년대 무렵 초창기 블라우스는 여성들이 흔히 입는 의상이 아니었다. 오직 노동자, 예술가, 농민, 어린이들이 주로 매우 헐렁한 블라우스를 입었다. 블라우스는 느슨한 디자인이었고, 허리띠나 벨트로 허리를 조였다. 오늘날 블라우스라는 용어는 주로 여성용 셔츠를 지칭하지만, 1890년대까지 다소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져 여성의 옷장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고, 격식을 차리지 않은 옷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페전트 블라우스의 특징

농민들이 주로 입던 헐렁한 초창기 블라우스와 형태가 유사한 페전트 블라우스는 일반적으로 유럽이나 미국의 농민들이 애용하는, 혹은 보헤미안 집시 의상에서 유래한 소박한 블라우스를 지칭한다. 주로 손으로 짠 목면 등을 사용하며, 목둘레나 소매 끝 단에 고무줄이나 끈을 넣어 잡아당긴 드로우스트링 넥(drawstring neck), 느슨한 퍼프(puff)나 비숍(bishop) 모양의 소매, 앞에서 말한 바 같이 헐렁한 품을 가지며, 목둘레나 소매에 스모킹이나 그 지방 특유의 색실로 자수 장식을 하기도 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페전트 블라우스는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 의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루마니아 페전트 블라우스를 예를 들면, 그 기원은 트란실바니아 남동부, 몰도바 및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수천 년 전, 기원전 5500~27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름진 네크라인에 직선형 바디가 있고, 소매는 손목이나 팔꿈치 부분에서 주름을 잡은 경우도, 열린 종 모양으로 느슨하게 벌어진 경우도 있다. 또한, 태양으로부터 보호를 원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짧은 소매가 없었고, 전통적으로 리넨, 대마, 실크로 만들어졌다.

한편, 소매 자수는 전통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 알티샤(altiśa)는 어깨 위에 놓여 하늘을 의미하고, 둘, 알티샤(altiśa)를 소매의 더 볼륨감 있는 아래쪽 절반과 연결하는 더 좁은 장식용 밴드 일반적으로 기하학 패턴으로 하늘 아래 꽃을 상징하는 흰색 또는 회백색, 노란색 또는 빨간색인 인크레스 (încreş)가 있고, 마지막 볼륨감 있는 아래쪽에 있는 라우리(râuri), 대각선 또는 수직선으로 장식되고 지구를 나타낸다고 한다. 쿠 타블라(cu tabla)라고 불리는 일부 블라우스에는 상단에 알티샤가 없고 소매 아래로 수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넓은 자수 패널이 포함되어 있다. 블라우스의 자수 스티치는 다산, 건강 등 다양한 축복의 상징을 포함했다고 하며, 착용자의 결혼 여부, 연령, 경제적 지위 같은 그 사람의 삶을 표시하는 것 외에도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출처] Romanian peasant blouse, getty image

전통적인 블라우스는 1920년대 마리(Marie) 여왕이 입기 시작하면서 그 범위가 확대될 때까지는 루마니아 농민 여성들만이 입었다.

이후 1940년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루마니아 화가로부터 블라우스를 선물 받은 후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일련의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출처] 페전트 블라우스를 입은 마리 여왕, 앙리 마티스가 그린 'Peasant blouse'(1936), threadwritten.com

한편, 페전트 블라우스는 현대사에서 가장 잔인한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전략적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스탈린 러시아의 사회주의 현실주의와 나치 시대의 독일은 페전트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을, 실제 농민, 즉 유니폼이나 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밭에서 왕성히 일하는 여성으로 묘사하였다. 즉, 유니폼과 작업복처럼 페전트 블라우스는 민족주의와 출생주의(nativism)에 뿌리를 둔 특별한 역할을 가진 의복으로 표현되었다. 이 블라우스는 전통적 모성, 일에 대한 적합성, 국가에 대한 충성, 토지와의 연결성 등 민족적 유산과 소박한 단순함의 상징으로써의 역할에 적합하였던 것이다.

[출처] 전체주의 정권에 활용된 페전트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들이 담긴 포스터

대중 속으로, 패션으로 스며들어간 페전트 블라우스

'페전트 블라우스'라는 용어는 1902년 보그(Vogue)의 한 페이지에 등장하였는데. 소박함과 목가적 단순함을 암시하는 하이넥의 자수 장식이 있고, 루즈한 비숍 소매를 가진 모습이었다.

또한, 할리우드는 영화를 통해 1920년대에 블라우스를 대형 스크린으로 가져왔는데, 1918년 폴라 네그리(Pola Negri)는 영화 '집시 블러드(Gypsy Blood)'에서 큰 귀걸이와 헤드 랩(head wrap), 페전트 블라우스를 입은 카르멘으로, 1925년엔 제타 구달(Jetta Goudal)이 '로드투예스터데이(Road to Yesterday)'에서 집시 스타일을 연출하였다. 그 당시 여성들은 코르셋을 그냥 놔두고 있었고, 페전트 블라우스의 매력은 부분적으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다양한 형태로 다시 영화에 등장했으며, 종종 캐릭터에 관능미를 더하기 위해, 제인 러셀(Jane Russell)의 'The Outlaw'(1943 ), 제니퍼 존스(Jennifer Jones)의 'Duel in the Sun'(1945), 마릴린 먼소(Marilyn Monroe)의 'Bus Stop'(1950) 같은 영화에 등장했다.

[출처] Jetta Goudal의 'Road to Yesterday'(1925), Jane Russell의 'The Outlaw'(1943 ), Jennifer Jones의 'Duel in the Sun'(1945), Marilyn Monroe의 'Bus Stop'(1950), getty image

20세기 초,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미의 기준을 피하려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열망에서 페전트 블라우스를 채택하였으며, 페전트 블라우스는 반문화 운동의 세대를 통해 번성해 나갔다. 1920년대의 보헤미안의 뒤를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여성들이 이어 나갔다. 이처럼 페전트 블라우스는 보헤미안부터 비트닉, 히피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다양한 반문화 물결과 같이 했다

1976년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의 러시아 컬렉션(Russian/Ballet Russes collection, 사실은 러시아 복장보다는 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의 낭만적인 의상에서 더 영감을 받았지만...)은 자수 디테일과 물결치듯 풍성한 소매가 달린 페전트 블라우스를 패션의 주류로 가져오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처] Russia collection of Yves Saint Laurent, 1976, Google Images

이후 1990년대 '히피 시크hippie chic' 트렌드에 1960년대 패션이 부활하고, 케이트 모스(Kate Moss),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메리-케이트 올슨(Mary-Kate Olsen) 등 유명 인사들이 대중화한 2000년대 '보호 시크(boho chic)' 트렌드로 보헤미안 스타일이 자신만의 트렌드로 굳건해지며 페전트 블라우스의 인기도 굳건해졌다.

몸을 구속하지 않는 헐렁한 품처럼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깔려 있는 아이템, 페전트 블라우스의 여유로움을 이 더운 여름에 즐겨봄은 어떠한지?

[출처] Chloe 2025SS RTW etc.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